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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편적 공감과 차별화의 황금률 - ‘넥스트 마스터즈’ <소년심판> 김민석 작가

김민석 작가는 노희경 키즈였다. <굿바이 솔로>(2006)와 <그들이 사는 세상>(2008)에 감화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다시 보기’가 여의치 않던 시절, 매주 본방송 시간에 맞춰 TV를 트는 게 중대 과제였다.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집까지 미친 듯이 뛰었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달리냐고 물어서 지금 당장 가봐야 한다고 답한 기억이 남아 있다.” 심박수가 올라가는 속도로 꿈이 밀려들어왔다. 드라마작가가 되고 싶어 서울예술대학 극작과에 진학했는데, 대선배인 노희경 작가가 특강을 오곤 한다는 소문도 영향을 미쳤다. 아쉽게도 재학 기간 중 그 수강생이 되는 행운은 누리지 못했다. “우리 학번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김민석 작가가 데뷔를 점쳐볼 수 있게 된 건 졸업 후 들어간 작가교육원에서였다. 또 다른 노희경 키즈들 틈에서, 2013년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 TV드라마 신인상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트로피를 안긴 단막극 <‘정이’를 위하여>는 공교롭게도 그가 훗날 쓴 작품들과 일부 소재를 공유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아픈 딸아이를 위해 ‘촌지 마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악착같이 병원비를 모아온 한 여자 교사가 불미스러운 제안을 받는다. 바로 학교 이사장 조카딸의 성적을 위조해달라는 것. 부정행위의 대가는 딸의 병원비다. 이미 위태로웠던 주인공을 또 한번 도덕적 기로에 세우고 출발하는 이 극본은 여러 제작사의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서 연락을 많이 받아서 금방 일이 성사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당선과 방영은 다른 문제라는 걸.”

<소년심판>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건 2022년 2월. 당선 이후 새 대본을 집필해 방영하기까지 꼬박 9년이 걸렸다. <소년심판>에만 그중 절반 이상의 시간을 쏟았다. 제작사 길픽쳐스가 관련 아이템을 키워보자고 했을 때만 해도 “거창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게 김민석 작가의 전언. “소년범죄, 너무 심각한 거 아니야? 잘못한 아이들은 엄벌해야지!” 김민석 작가는 본격적인 조사에 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 느끼고 있었다. 기획안도 비슷한 방향으로 잡아갔다. 그러나 취재원을 하나둘 만날수록 그가 품었던 생각에 조금씩 금이 갔다. 소년보호재판 경험이 있는 판사, 변호사, 나아가 각종 청소년 시설 직원들은 유사한 당부를 했다고 한다. “뉴스에 나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제발 잘 좀 써달라.” 그들에게서 청소년들이 범죄에 물들기까지 겪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수도 없이 듣고 나니 딜레마가 커졌다. “취재한 내용을 다루자니 여론과 괴리가 생길 듯했고, 무시하자니 현실이 여론과 같지만은 않더라. 고민 끝에 온정주의와 엄벌주의를 각각의 인물로 승화해 치열하게 싸우게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판단은 추후 <소년심판> 공개를 앞두고 작품에 도움을 준 판사들을 대상으로 연 시사에서부터 긍정적인 평을 들었다. “각각의 판사 캐릭터들이 대변하는 정신을 하나로 합친 것이 실제 판사 한명의 머릿속과 같다는 피드백이 인상적이었다.”

가치와 가치의 충돌을 극의 정체성으로 삼자 10부작의 구조가 선명해졌다. 촉법소년의 정의를 내려주는 에피소드로 문을 연 뒤 소년범죄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아주는 에피소드를 배치한 다음 가정, 사회, 그리고 법원이 놓친 것들을 짚어주는 에피소드들이 뒤를 따르게 했다. 넷플릭스와의 만남은 그 구성을 짜고 초반부 대본을 매만질 때쯤 이뤄졌다. 이제 막 <킹덤>이라는 대작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시점의 넷플릭스 코리아가 어느 방송사보다도 먼저 <소년심판>에 관심을 표했다. “넷플릭스가 대본을 읽어봐준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던 입장”의 신인 작가는 2주가량의 기다림 끝에 “이례적인 소식”을 연달아 접했다. “넷플릭스 코리아의 승인을 받아 단번에 작품이 편성된 것, 홍종찬 감독이 대본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출 의사를 전해준 것, 김혜수 배우까지 빠르게 합류를 결정해준 것 모두 무척이나 운이 좋았다. 평생의 운을 이때 다 끌어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넷플릭스와 함께하면서부터는 김민석 작가를 괴롭히던 걱정이 옅어졌다. “과연 어느 채널에서 청소년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답이 없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한계를 정해주지 않았다. 쓰고 싶은 대로 써보라고 판을 깔아준 넷플릭스로부터 신인 작가를 향한 존중을 느꼈다.” 무의미하게 자극적인 묘사가 아닌 메시지에 걸맞은 표현을 내세우기 위해 김민석 작가는 홍종찬 감독과 1화 대본부터 차례로 검토했다. 넷플릭스가 제약을 지우자, 캐릭터들에게 부여된 맥락을 살릴 여지가 늘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도 감수하기로 했다.

“답을 내리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 그렇게 시청자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게 하는 드라마”를 추구한 결과는 놀라웠다. <소년심판>은 넷플릭스 공개 일주일 만에 비영어권 TV 부문 글로벌 차트 1위를 달성했다. 국내외로 반향을 일으키면서 사회적 논의에도 불을 붙였다. 그해 법무부는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 TF’를 꾸렸고, ‘소년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조심스럽게 일련의 흐름을 지켜본 김민석 작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댓글이 있다. “겁 없는 신인 작가의 대본에 제대로 보답해준 배우들과 플랫폼”이라는 감탄이었다. “그 말이 정말 맞았다. ‘아이들은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가. 사회는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모두가 한번쯤 자문했을 주제를 배우들과 플랫폼의 힘으로 풀어나간 덕분에 <소년심판>이 흥행할 수 있었다.”

김민석 작가는 차기작 <퍼스트 닥터>로 넷플릭스와의 동행을 이어간다. 연출은 이번에도 홍종찬 감독이 맡는다. 정려원, 하윤경, 백현진, 김종수, 김무열 배우가 캐스팅된 신작의 무대는 소아외과 병동이다. “<소년심판>이 그랬듯 <퍼스트 닥터>도 한국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아이를 위하는 어른의 보편적인 정서를 갖춰 세계 시청자의 공감을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