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부산. 열아홉 세리(신은수)는 국민 영웅 골프선수와 이름이 같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은 악성 곱슬머리에 발목 잡혀있다고 믿는다. 학교 최고 인기남 김현(차우민)에게 일생일대의 고백을 하기 위해 세리가 세운 작전은 단 하나. ‘서울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자신 있게 내건 미용실 사장의 아들이자 서울에서 온 전학생 한윤석(공명)과 친해지는 것이다. 콤플렉스마저 진취적으로 돌파하려는 세리의 생기에 조용히 스며드는 윤석은 그렇게 동상이몽의 짝이 되어 <고백의 역사>를 함께 써내려간다.
<십개월의 미래> <힘을 낼 시간>으로 청춘의 난제들을 직시해온 남궁선 감독은 감독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부터 드나들었던 부산을 떠올리며 10대의 로맨스에 1998년의 공기를 불어넣었다. 2025년 8월29일 넷플릭스 공개 직후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영화 부문에서 선전한 <고백의 역사>는 순도 높은 ‘부산산(産)’이다. 바닷가와 학교, 골목의 로케이션은 물론 세리의 집과 아버지의 창고 세트까지 영화의 주요 공간이 부산에서 촬영되고 지어졌다. 현실적인 여건상 서울 촬영안도 검토했지만 제작진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린 건 부산의 하늘이었다. 빌딩 숲에 시야가 막히는 서울과 달리 부산은 어디서든 하늘이 열리고 수평선이 보였고, 그 개방감은 열아홉 청춘의 파릇파릇한 에너지와 공명했다. 20세기 부산을 오늘의 화면 위에 되살린 <고백의 역사>의 제작기를 돌아보고 남궁선 감독이 해운대 에서 머문 시간을 추억한 인터뷰를 함께 싣는다.
박세리? 바닷가 바위 위에 고이 벗어둔 교복과 그 위의 새겨진 범상치 않은 이름에 눈길이 간윤석이 명찰을 집어들자마자 세리의 교복이 바람에 날아간다. 교복을 잡으려던 윤석이 결국 바다에 빠지고 마는데, 하교 후 바다를 제 안방처럼 누비던 세리가 기세좋게 그를 건져낸다. 어떻게 이런 순정만화 같은 첫 만남이 가능한가 하면, <고백의 역사>가 바다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여름이면 수영 한바탕하고 집에 돌아가는 소년, 소녀들의 세계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김일연 촬영감독에게도 <고백의 역사>의 바다는 각별하다. 부산 촬영에서 한 장면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세리와 윤석이 처음 만나는 동네 바닷가. 서울에서는 접하기 힘든 공간이다.” 그는 송정 인근 구덕포 해변에서 영화 초반부의 결정적 인상을 만드는 해변 장면을 촬영하면서 “하늘의 파란색과 바다의 푸른색이 어우러지는 ‘블루의 공간감’이 작품의 핵심 이미지가 되겠다고 확신”했다.
세리와 윤석의 역사가 시작되는 동네 바닷가가 한축이라면 <고백의 역사>의 다른 한축엔 세기말 부산 청소년들의 놀이터, 광안리가 있다. 실제 촬영은 송정해수욕장에서 진행됐다. “영화 속 그 시절 아이들이 가장 잘 놀던 곳은 실제로는 광안리였다. 서울 애들이 홍대에서 놀았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의 광안리는 현대적으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앞을 보면 광안대교가 있어 시대가 맞지 않았다(광안대교는 1994년 준공을 시작해 2003년 개통됐다.-편집자). 송정은 아직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한쪽 면을 찍으면 옛 분위기를 살릴 수 있었다.”(배정윤 미술감독) 윤슬이 부서지던 바다를 배경으로 문을 연 <고백의 역사>는 세리와 윤석이 첫사랑의 통증을 배워가는 가을, 겨울로 흘러가면서 한층 깊고 쓸쓸한 기색도 드러낸다. 계절마다 달라 지는 색과 빛으로 “이 영화의 계절감을 떠받치는 시각적 토대”(김일연 촬영감독)가 된 것이다. 남궁선 감독은 영화 말미에 세리와 윤석이 재회하는 광안리 바닷가 장면 역시 송정해수욕장에서 촬영하고, 이후 당시 교각이 세워지기 시작한 광안대교의 모습을 CG로 넣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산 로케이션을 묻자 모든 제작진이 입을 모아 학교를 꼽았다. 부산이라는 배경을 보여주려면 결국 바다와 근접한 곳을 찾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 낙점된 학교가 영도의 부산남고등학교였다. “후문에서 바로 바다가 보이는 길이 있다. 학교가 로맨틱하다니! 탁 트인 뷰가 예뻐서 <고백의 역사>를 위해 마련된 촬영지 같았다.”(배정윤 미술감독) 김일연 촬영감독의 시선도 같은 곳을 향했다. “운동장 자체는 특별하지 않은데 그 주변을 둘러싼 하늘, 멀리 보이는 바다 같은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 학교가 바다에 인접해 있고 주변에 건물이 둘러싸여 있지 않아 운동장이 자연에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교실 내부는 다른 학교에서 따로 찍었다. 지금은 폐교가 된 가락중학교다. 제작진은 그 시절 흔했던 우드 데크 바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락중학교 로케이션 덕분에 그 시절의 정취를 살릴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 근방에서 촬영한 수능 시험장앞 촬영 장면에선 뜻밖의 선물도 있었다. “촬영 시기에 은행잎이 너무 예쁘게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서울 사람들에게 수능 하면 한파의 이미지가 강하니 ‘너무 단풍 아니냐’ 걱정하고 있었는데, 로케이션 관계자가 ‘수능 하면 단풍이지’ 하시더라. 부산은 수능 계절이 아직 늦가을이었던 거다.”(배정윤 미술감독)
윤석 모자의 미용실을 찾는 여정은 이 영화 로케이션 헌팅의 하이라이트다. 배정윤 미술감독의 전언은 이랬다. “번화가가 아닌 주택가 미용실을 찾으려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결과적으로 지도를 보다가 청학동에서 찾았다. 삼거리에 위치한 벽돌 건물 미용실이었 는데 위치가 너무 괜찮아 실제로 가봤더니, 거기서 보이는 뷰가 누가 봐도 부산이었다. 저 멀리 컨테이너를 옮기는 타워크레인과 항구가 보이는, 정말 부산 그 자체. 골목과 동네 이미지만 생각하고 헌팅했는데 항구까지 딸려온 거다.”
영도 청학동 미용실을 발견한 제작진은 그곳을 살펴보러 가는 길에 세리와 친구들의 등굣길 스폿까지 찾았다. 영도구종합사회복지관 부근 도로들이었다. 김일연 촬영감독은 영도 전체의 인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개발이 멈추고 시간이 보존된 느낌, 높은 빌딩이 없어뻥 뚫린 시야가 다른 정취를 만들어낸다.” 그 밖에도 90년대 배경의 골목을 고르는 미술팀의 기준은 “현대물이 걸리지 않는,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과 과거의 오래된 추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부산의 숨은 면면을 찾아내는 것”(김일연 촬영감독)이었다. 영도 도로 외에 제작진의 마음을 사로잡은 로케이션은 반송동 주택가였다. 세리 아버지의 창고 인근 도로를 이곳에서 찍었다. 미술팀은 이곳 골목길 위에 “넝쿨 소품을 색깔별로 준비하고 낙엽을 뿌리며 여름에서 겨울로 흐르는 자연의 색감을 골목마다 심었다”. 배정윤 미술감독은 “시대물 촬영에 있어 부산만큼 매력적인 곳은 없을 거다. 과거와 현대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라고 확신했다.
배정윤 미술감독은 세리의 집을 구현할 때 부산의 오래된 주택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기 위해 “루바 같은 나무 자재를 쓰고 바닥도 흔히 쓰는 마루가 아니라 그 시절 장판을 출력해 디자인”했다. 무엇보다 주인공 세리의 성격이 묻어나는 소품도 부산영 화촬영스튜디오에 살뜰히 옮겨담았다. “세리 방은 전형적인 고등학생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났으면 했다. 세리가 좋아하는 머리핀, 미용 관련 잡지, 바다 이미지,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하는 고등학생 특유의 붙이는 이미지들을 많이 가져갔다.”(배정윤 미술감독) 여름부터 겨울까지를 관통하는 작품인 만큼 색감 설계도 치열했다. 다양한 색을 나열하기보다 김일연 촬영감독이 일찍이 파랑을 낙점했듯 파랑, 초록의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인위적인 색은 덜어냈다. 세리의 집은 블루와 민트의 톤 앤드 매너로 정리해 교실도, 교복도, 집 안도 같은 톤 위에서 호흡하게 했다. “스튜디오가 시내 한가운데 있다는 부산만의 이점 위에서”(김일연 촬영감독), 1998년의 살림살이가 오늘의 세트로 완성됐다.
세리가 가족과 부대끼는 오래된 주택과 아버지(류승수)의 창고는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지은 세트다. “도심 해운대에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접근성이 좋았다. 서울에서는 파주나 일산, 강원도까지 가야 하는 거리다.” 촬영감독이 꼽는 부산 스튜디오의 미덕이다. 배정윤 미술감독은 세트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밀도’라고 못 박는다. “드라마보다 훨씬 빽빽하고 생생한 퀄리티의 소품을 많이 가져가자는 게 원칙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