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를 부산 배경으로 각색한 까닭은.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고향과 고향 음식을 깊이 그리워해왔다. 특히 영화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경상도식 소고깃국은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끓여본 음식인데, 도저히 어머니가 해주신 맛이 나지 않아늘 안타까웠다. 즉 <넘버원>을 만드는 과정은 고향과 어머니를 향한 내 마음속 사랑을 따라가는 일이었다. 극 중 하민이 입은 교복도 내가 다닌 경남고등학교 교복이다. 영화 속 거리, 식당들도 어릴 적 자주 찾던 곳들이다. <거인>에 이어 최우식 배우가 내 유년 시절을 영화로 완성해주는 느낌이었다. <넘버원>을 통해 영화는 곧 시간을 담는 타임캡슐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 인물들을 부산 출신으로 설정하면서 그들의 말씨도 섬세히 다듬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항상 아쉬웠던 점이 있다. 말투 때문인지 부산 사람들을 굉장히 거칠고 투박하며 과묵한 캐릭터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부산의 남자고등학교에 가면 그렇게 재잘재잘 수다스럽고 시끄러울 수가 없다! 하민의 입버릇인 “압”은 내가 고등학생 때 아이들이 서로에게 서운하거나 섭섭할 때 쓰던 추임새고, 은실의 입버릇인 “아이고 시어마씨야”는 우리 할머니부터 어머니까지 매일 쓰던 말이다. 장혜진 배우는 부산 출신이고, 내 어머니와 비슷한 세대라 사투리에 밴 정서와 말맛을 너무 잘 알아 최우식 배우까지 돕곤 했다. 최우식 배우는 사투리 연기가 처음이라 두려워했지만, 나와 <거인>을 함께하며 특별한 친분을 쌓다 보니 평소 내 말투를 잘 따라했다. 덕분에 영화 속사투리도 쉽게 이해했다고 한다.
- 하민 모자의 집인 초량동 초원아파트가 오프닝 시퀀스를 시작으로 여러 번 프레임을 채운다.
제작부 스태프들에게 꼭 섭외해달라고 부탁한 곳이다. 산복도로가 많은 부산 지형의 특징이 잘 보이는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하민이 은실을 떠날 때는 오르막, 하민이 은실에게 갈때는 내리막의 구조로 보이게끔 집을 표현하고 싶었다.
-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도 감회가 새로웠을 듯하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옆에 있던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영화감독의 꿈을 꿨다. 이곳에서 다르덴 형제, 아키 카우리스마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를 보며 공부했다. 시간이 흘러 부산 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내 작품을 촬영한다는것 자체가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지난한 고생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스튜디오는 넓고 쾌적하며, 감독과 스태프를 위한 공간이 잘마련되어 있다. 아무래도 캄캄한 실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답답할 때가 많은데,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어 멘털을 순환하기에도 최상의 공간이다.
- 가족의 집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곳이 부산의 맛집들이다. 하민과 은실이 할매집, 18번완당 집, 종각집, 화국반점 등을 차례로 들른다. 전작을 떠올리게 하는 거인통닭도 반가웠다! 부산을 대표하는 맛집이 여럿인 만큼 어떤 곳을 영화에 담을지도 많이 고민했을 텐데.
우리가 정한 식당 로케이션의 조건은 “업력 50년 이하의 가게는 안 끼워준다”였다. 모두 내가 부산에 가면 여전히 찾아가는 곳들이 기도 하다. 부산 하면 다들 회나 생선, 해산 물을 많이 떠올리는데, 부산은 진정한 ‘분식의 도시’라는 점도 드러내고 싶었다. 거인통닭은 <거인>을 아직도 기억하고 사랑해주시는팬 분들에게 선물처럼 보여드리고 싶었다. 다른 지역 분들은 영화 때문에 일부러 지은 식당 이름이 아니냐고 하는데, 거인통닭은 부산 3대 통닭집으로 꼽힌다! 아쉽게도 내가 어릴적 다니던 부평동 본점은 촬영 당시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다른 분점에서 촬영했다.
- 부산에서 촬영하며 맛있게 먹은 음식 혹은 즐겨 찾은 식당을 소개한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소고깃국이 드시고 싶다면 해운대역 버스 종점에 있는 해운대원조할매 국밥에 가시면 되고,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나만의 맛집으로는 다리집(떡볶이, 오징어튀김), 신흥관(중국집), 이승학돈까스, 스완양분식, 마산집돼지국밥(구덕운동장 뒤편)이 있다.
- 장혜진 배우가 영화에 나오는 경상도식 소고깃국을 직접 요리했다고 들었다. 은실이 레시피를 읊는 장면도 있는데, 장혜진 배우의 노하우가 포함된 내용인지 궁금하다.
<넘버원>을 만드는 과정이 어머니의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말씀드렸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소고깃국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최대한 어머니가 끓여주신 것과 비슷한 맛을 찾았다. 비결은 국간장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레시피는 그렇게 찾은 레시피고, 장혜진 배우도 자주 먹어온 음식이라 쉽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고깃국과 콩잎은 촬영이 끝나고 식사할 때마다 배우들, 스태프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소고깃국과 육개장의 차이, 콩잎과 깻잎의 차이에 대해 식사할 때마다 100분 토론이 열렸다.
- 장혜진 배우와 최우식 배우는 <기생충>에서 먼저 모자의 연을 맺고, <넘버원>에서 재회했다. 감독을 기쁘게 한,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가장 빛난 순간을 꼽는다면.
하민이 암 선고를 받고 부산에 내려갔을 때은실이 반가운 마음을 드러내기 쑥스러워하며 일부러 치매에 걸린 연기를 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두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 장면을 이렇게 사랑스럽게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두 배우는 단순히 사투리 말투만 따라하는 게 아니라 사투리 대사에 부산 사람들의 정서를 디테일하게 담았다. 말은 짧아도 숨겨진 애정이 깊다는 부산 사투리의 핵심을 말이다.
- <넘버원> 개봉 전 인터뷰에서 “가족영화를 만들려다 가족을 만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따뜻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기억하기를 바라나.
요즘 영화나 드라마는 인물의 죽음을 하나의 소재로 쉽게 소비하는 경향이 있어 걱정스럽다. 나와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쉽게 생각하게 될까봐 그렇다. <넘버원>은 가족영화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흘려보내는 한끼 식사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끔 지독하게 외롭고 사는 게 지칠 때,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찾는 영화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윤희에게> <바튼 아카데미>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넘버원>도 그런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극 중 려은(공승연)의 대사처럼 “결핍은 결점이 아닌 가능성”이니 관객들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