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부산은 긴밀한 연결고리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가 드나들던 중국집은 부산 차이나타운에 있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영군(임수정)과 일순(정지훈)이 교감하던 원예치 료실은 동래구 금강공원 식물원이다. 그 밖에도 부산관광고등학교 근처에는 <헤어질 결심>의 서래(탕웨이)가 사는 아파트가, 초량동 초원 아파트 인근으로 가면 용의자를 좇던 해준(박해일)의 동선이 한눈에 보인다. 그만큼 부산의 멋과 촬영 환경을 잘 아는 박찬욱 감독과 제작진이 <어쩔수가없다>의 촬영지로 부산을 선택한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네 식구의 가장 만수(이병헌)다. 제지 전문가인 그는 25년 동안 몸담은 제지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 받는다. 직업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었던 그는 남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러나 자신에게는 지극히 타당한 방식으로 재취업을 준비한다. 경쟁자들을 말 그대로 제거하는 것이다.
<어쩔수가없다>의 부산 제작 비하인드를 들려줄 인물로 이주용 제작 부장을 만났다. 부산 로케이션을 담당했으며 올해로 12년차, 만수 못지않은 자기 분야의 전문가다. 그의 시선이 더해진 포토 코멘터리와 그와의 인터뷰는 영화 스태프와 박찬욱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줄 것이다.
오구건축공사 앞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한다. 만수는 제지기업 ‘문 제지’의 특수지 라인 반장 선출(박희순)을 죽이려 한다. 선출이 사라지면 그의 자리가 비고, 자신에게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출을 미행하던 만수는 그를 따라 왼쪽 계단으로 내려갔다가 들킬 것을 우려해 다시 계단을 오르더니 오구건축공사 옥상으로 향한다. 시나리오에서 이 부분을 읽은 이주용 제작부장은 “이런 곳은 부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장소 묘사에 따르면 가파른 계단이 있어야 했고, 집들 위로 옥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서 그 위에서는 바다가 보여야 했다.” 오구건축공사는 영도구에 있는 실제 철물점이다. 촬영 직전에야 어렵게 찾은 장소였다. “제작팀 A, B팀 6명에 로케이션 지원팀 2명까지 총 8명이 몇달 동안 번갈아 부산을 오가며 적합한 곳을 찾았다. 각자 발견한 곳을 단체 대화방에 올려 함께 검토했는데, 오랫동안 여기다 싶은 장소가 나오지 않아 초조했다. 그러다 막판에 팀원이 올린 이곳 사진을 보고 ‘감독님께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행히 감독님도 만족해하셔서 최종 촬영지로 결정했다.”
만수가 선출을 미행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이 장면은 10곳이 넘는 장소를 오간 끝에 완성했다. 사진 속 ‘국제컴퓨터 세탁’도, 상호가 반쯤 보이는 목욕탕도 모두 실제 영업 중인 곳이다. 주인에게 촬영 허가를 받는 과정은 어땠을까. “영화에 나올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니 다들 크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셨다. ‘알아서 하라’는 반응이었다. (웃음)” 다만 오구건축공사 주인은 처음엔 살짝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고. “신기해하시면서도 바로 허락해주시지는 않았다. 나중에 여러 명이 함께 찾아 오니 정말 촬영하는구나 싶으셨는지 쓰라고 해주셨다. 배려해주신 덕분에 간판도 CG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만수가 오구건축공사 옥상으로 올라가는 장면은 오른쪽 크레인 장비를 이용해 촬영했다. 직접 옥상에 올라가본 이주용 제작부장은 “이것저것을 세팅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라며 안도했다. 옥상에 오른 만수는 아래에서 전화에 정신이 팔린 선출을 향해 화분을 던지려 한다. 화분에서 새어나온 물이 만수의 얼굴로 떨어지는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다. 이 한 장면이 완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걸렸다. 연기적으로도, 촬영 기술적으로도 난도가 높은 장면이라 정교한 작업이 요구됐다.” 극 중 옥상을 화분으로 가득 메울 수 있었던 건 동네 주민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미술팀과 소품팀이 화분을 준비해왔는데 다 놓고 보니 부족한 감이 있었다. 주민들이 화분을 흔쾌히 빌려주셨고, 20개 정도가 더해 지면서 풍성한 화면이 나올 수 있었다.”
유일하게 정장을 입은 남자가 눈에 띈다. 배우처럼 보이는데 어떤 역할이었을까. “가이드 배우다. 촬영 전에 이분과 동선을 맞추고 리허설과 테스트를 함께했다.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이주용 제작부장) 또 하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오래된 ‘BYC’ 간판이다. “미술팀이 손을 댄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간판이다. 마치 오래된 세트장 같은 공간을 실제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부산의 매력이다. 감독님도 그런 점 때문에 부산을 좋아하신다.”(이주용 제작부장)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촬영 중.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노란 안내판이 보인다. 이주용 제작부장은 이를 보며 당시를 떠올렸다. “크레인 촬영 때문에 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세 시간 정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버스회사와 구청, 시민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촬영했다. 제작부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나름의 협조 요청 노하우가 생겼다. 처음 만났을 때 무뚝뚝한 분이라면 곧바로 친근하게 다가가기보다 몇 차례 얼굴을 익히며 신뢰를 쌓는다. 반대로 처음부터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들에게는 바로 촬영 협조를 부탁드린다. 부산 시민들은 대부분 친절하셨다.”
박찬욱 감독이 모니터 앞으로 돌아가고 있다. 감독과 스태프들의 옷차림, 하늘만 봐도 이날의 무더위가 짐작 가능하다. 실제로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겼다. 그나마 다행인건 부산 촬영이 이어진 일주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수가 계단을 다시 뛰어 올라가는 장면을 찍을 때 이병헌 배우가 고생을 많이 했다. 땀을 흘리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렸다. 이 장면에서 감독님은 만수가 계단을 뛰어오르는 모습이 조금 우스꽝 스럽게 보이길 원하셨다.”(이주용 제작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