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의 역사>는 배우 공유, 정유미가 깜짝 등장하는 카페 장면 하나를 제외한 전 장면을 부산에서 찾고, 부산에서 찍었다. 남궁선 감독에게 부산은 “살았던 적은 없지만 제2의 고향 같은” 도시였다. 스무살 무전여행의 종착지로 처음 만난 이래 20여년간 해마다 부산을 오간 그는, 광안대교가 지어지기 전의 광안리를 기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1998년의 부산을 복원하며 석달간 해운대에서 영도로 출퇴근한 감독을 만나 이 영화가 정의한 ‘부산성’에 대해 물었다.
- 부산이 배경인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땠나.
즐거운 걸 하고 싶다고 마음을 정했을 때 들어온 작품이었는데, 보니 부산 배경이기에 더 마음이 갔다. 부산을 너무 좋아한다. 살았던 적은 없지만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 항상 있다. 스무살 때부터 해마다 부산에 갔다. 부산 출신 친구도 많고 부산국제영화제도 있고, 옛날 <세상의 끝>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도 엔딩이 부산이었으니. 정작 영화에는 안 나왔지만 해운대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애정이 있는 만큼 더더욱 시대극의 제약이 있더라도 부산의 특성을 잘살린 화면을 구현하고자 했다. 부산 친구들이 분명히 한마디씩 할 테니 욕먹지 않게 잘해보자, 하고. (웃음)
- 촬영을 위해 부산에 머문 기간은 언제인가.
2024년 9월부터 11월, 석달쯤이다. 카메오로 특별 출연한 두 배우가 나오는 카페 장면 하나만 인천 월미도에서 찍고 나머지는 다 부산에서 촬영했다. 실제 부산이 아니어도 구현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고집했다. 부산이라는 지역에 약 석달을 머무르면서 정말로 이 도시를 살아간다는 느낌이 참 좋았다.
- 한국영화에서 부산은 장르물의 배경으로서 갖는 존재감이 컸다. <고백의 역사>에서는 어떤 이면을 보고 싶었나.
내가 보고 싶었던 부분은 부산이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큰 대도시라는 점이다. 도시성이 있는데 바다와 자연이 생생하니 그 뒤섞임이 매력적이다. 정서는 서울보다 직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강하고 이국적인 이미지의 부산이 아니라 생활감과 도시성, 편안함이 묻어나는 부산을 담았다. 그래서 사투리도 배우들이 과장되지 않게, 매우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위해 애썼다.
- 개봉 당시 <씨네21> 인터뷰에서 감독으로서 하이틴물이 자신의 길티 플레저라고 말했는데, 남궁선표 청춘 로맨스의 개성과 부산 로케이션 사이의 접점을 발견한 것이 있다면.
모든 하이틴물에는 학교, 집, 그리고 아지트가 있다. <고백의 역사>에는 바로 그 부분, 아지트로서의 부산이 어떤 풍경인지 사랑스럽 게 담겼으면 했다. 일단 바다라는 존재가 동네 놀이터 같은 느낌이길 바랐다. 집 앞 바다에서 수영하고 집에 들어가는 건 <고백의 역사>가 부산을 배경으로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항상 동네 해변, 그리고 광안리 해변이라는 두 스폿을 아지트로 삼는다는 설정을 중시했다. 동네 해변은 평소에 가고 광안리는 특별한 날 가는 식이다.
- 감독의 전작들이 코믹한 순간에도 서늘한 칼을 품고 있었다면 <고백의 역사>는 가장 화창한 영화다. 마침 배경이 부산이라는 점도 그런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까.
그게 내가 이 영화에서 ‘부산성’이라고 정의한 밝음이자 일종의 환상성이었다. 부산이란 도시가 유독 잘 쓰는 색깔들이 있다. 옛날 부산 역을 보면 빨강, 노랑, 파랑을 그어놓은 줄무늬 같은 것도 있고, 우리가 촬영한 영도에 가면 건물들에 특유의 적갈색 페인트, 하늘색 페인트가 있다. 이런 컬러 팔레트를 수집해서 배정윤 미술감독님에게 작업을 요청했다. 햇살, 바다, 골목 등 모든 것들의 채도가 높고 맑게 구현되길 바랐다. 영화 속에서 잠시 서울에 돌아간 한윤석이 “부산 가고 싶다”고 하잖나. 그때 말하는 부산이란 엄청난 생동감, 남다른 생기를 뜻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개념적으로는 서울에서 온 한윤석은 부산에 사는 박세리와 대비되는 존재이다. 도시를 향한 일종의 판타지를 허락한다면, 세리의 부산은 수험생이 공부 따위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좀더 즐겁고, 현재의 관계가 지닌 아름다움에 충실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 동네 해변으로 설정한 곳의 실제 로케이션은 어디인가.
구덕포라고, 송정 근처에 있는 구간이다. 최초에 각본을 쓴 작가님들이 생각한 곳은, 내 추측으로는 용호동쪽이었을 것 같다. 1990년대와 달리 지금은 개발이 돼서 촬영이 어려운 곳이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만 아는 바다 수영 장소인 거다. ‘현대가 묻어 있지 않은 그 느낌의 바다를 찾아야 한다’고 했더니 부산 스태 프들이 알려준 곳 중 하나가 구덕포였다. 실제로 가보니 스쿠버하는 분도 계시고 아침마다 와서 명상하는 분도 계시더라.
- 광안리 해변 장면의 실제 촬영지는.
광안리 신은 송정 해변에서 찍었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찍은 다음 그 베이스에 옛날 광안리의 모습을 CG로 넣는 형태로 작업했다. 완벽 하지는 않지만 과거 내 기억 속에 있는 광안 리를 되살리려 했다. 삼익비치 아파트라든지, 한창 지어지고 있는 중인 광안대교 밑단의 이미지라든지 핵심적인 이미지들을 이식했다. 사실 원래 대본은 세리와 윤석이 40대가 돼 재회하고 옛날 추억을 다시 찾아가는 구성이 었다. 그런데 나는 해피엔딩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졸업 이후로 시점을 당겨왔고 그땐 아직 광안대교가 지어지던 시기니까 끊겨 있던 교각이 갓 연결된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분위기를 아는 사람들에겐 향수를 자극하는 이미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일부러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스태프들로 촬영 팀을 꾸렸나.
대부분이 부산 촬영이니 용이성 측면에서 그편이 수월했지만, 사실 나는 처음 팀을 짤 때부터 무조건 실제 부산 사람을 많이 배치하자는 지침을 세우려고 했다. 단순히 부산 로케이션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을 편안하게 느끼고 부산의 정서를 아는 이들과 작업하고 싶었다.
- 아버지의 창고도 이 영화의 중요한 아지트다. 내부만이 아니라 골목으로 들어가는 외부까지 잡히면서 옛 정취가 느껴지는 골목 풍경이 두드러진다.
창고 안쪽은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세트 미술로 만들었다. 창고로 향하는 외부 골목은 세리와 윤석이 비 오는 날 피신해 들어가는 등의 장면에서 옛날 골목 느낌을 제대로 보여 주고 싶었다. 로케이션을 찾는 데 공을 들였는데 옛 동부산대학교가 있던 반송동 근처가 특히 주효했다. 90년대 후반에 있었을 법한, 건물의 밀집도가 낮은 동네 골목의 고즈넉함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었다.
- 학교 신을 촬영할 때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학교는 영도에 있는 부산남고등학교인데, 바다 바로 앞에 있는 곳이라 학교로 걸어 올라 가는 길에 시원하게 바다가 보인다. 영화 속에 학교 너머로 바다가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 장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원하고 찬란한 느낌만큼은 살아 있다. 부산남고등 학교의 등나무 앞 스탠드 역시 몇몇 장면에서큰 역할을 했다. 내 학창 시절의 추억 속에는 항상 스탠드에 앉아 있던 시간이 크게 남아 있어서, <고백의 역사>에서도 운동장 스탠드가 그 시대를 살았던 어떤 학생이라도 떠올릴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했다.
- 교실 내부는 다른 학교에서 찍었다고.
가락중학교다. 최근에 폐교해서 지금은 비어 있는데,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중개해주신 걸로 안다. 옛 모습, 나무 바닥이 잘보존돼 있어서 좋았다. 그 나무 바닥이 학교 한층에만 남아 있었는데, 초록색 칠판과 나무 바닥의 색이 옛 모습 그대로였다. 현장에서 전해 듣기로 송강호 배우가 나온 학교라고 하더라. 우리끼리 “선배님의 좋은 기운을 받자” 농담처럼 격려를 주고받았다. (웃음)
- 10대 시절부터 자주 드나든 감독에게 부산의 가장 큰 추억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제 반, 친구 만나러 간 게 반인 것 같다. 영화를 할 생각을 하기 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는 게 우리 청춘의 행사였다. 영화제가 남포동, 광복동에서 열리던 시절에 길에서 사람들을 마주치면 마냥 반가웠던 감정 같은 것이 생생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십 몇년 동안 해마다 변하는 걸 보다 보니 부산이란 도시에 애정을 느낄 수밖에. 지금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일 없이 그냥 놀러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 부산은 내게 어쩐지 서울만큼 잘 아는 도시처럼 느껴진다.
- 그외에 언급할 만한 부산 로케이션이 있다면.
박정민 배우가 특별 출연한 장면이 부산대학교 앞이다. 그곳도 옛날 대학가의 모습이 남아 있더라. 시대물이라 어딜 봐도 CG 작업이 가능한지 등 현실적인 여건을 따졌던 작업인데 부산대학교 앞은 바꿀 게 그렇게 많지 않은 점이 재밌게 다가왔다.
- 이번 작업에서 만난 지금의 부산은 어떤 도시로 새롭게 기억될까.
이번엔 주로 해운대에서 지냈는데, 동네 주민 들과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느낌이 재미있었다. 당시 내 루틴 중 하나가 혼자 왔거나 둘이 여행 와서 사진찍기 어려운 여행객을 도와주는 거였다. “찍어드릴까요?” 하고 먼저 말을 걸면 다들 반겨주셨다. 그런 우리 옆으로 러닝을 하는 동네 주민들이 지나갔고. <고백의 역사>에 담긴 부산도 이처럼 도시와 바다, 휴양지와 생활공간, 환상성과 일상성이 섞여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 영도로 출근할 때는 해운대에서 영도로 넘어가는 다리를 지날 때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매번 경이롭게 바라보곤 했다. 휴차엔 스태프들과 함께 해변으로 바람 쐬러 가거나 해운대 앞을 걸어다니다 자연스럽게 마주쳤던 기억 역시 각별하다. 다만 <고백의 역사> 촬영 중간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었는데, 마치 갑자기 우리 집에 손님들이 몰려든 기분이었달까,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웃음) 숙소에서 잠시 마트에 들렀다 나왔더니 멋지게 차려입은 관계 자들이 “감독님!” 하고 인사해올 때 기분이 묘했다. 내가 반쯤 부산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던 것 같다.
- 단편 시절부터 특정한 장소에 녹아든 인물의 풍경숏을 생동감 있게 그려왔고 <힘을 낼 시간>은 제주가 배경이었다. 영화감독 남궁선에게 로케 이션은 어떤 영감을 주나.
단순히 ‘어디’라는 배경이 아니라 공간의 무드, 기후와 환경까지 담겨야 이야기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영화란 제작 시점으로부터 몇년만 지나서 봐도, 어떤 도시가 품고 있는 한시절의 분위기가 격렬하게 분위기로 전해져 온다. 나 역시 어떤 식으로든 실제 환경이 담기게 하고 싶다. 그런데 프로덕션의 제약 속에서 정작 지역색이 덜 드러나는 방식으로 촬영 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뉴욕 영화, 파리 영화가 있듯이 앞으로 더 제대로 된 서울 영화, 부산 영화를 만들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