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에서 8회차 촬영했다. 부산에서 촬영한 장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사제 대결에서 처음 패배를 맛본 조훈현이 기원 밖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을 부산 중앙동 거리에서 찍었다. 말없이 기원을 빠져나와서 감정을 터트리는 곳이 중앙동의 밤거리다. 촬영을 준비하면서 과거 종로구 관철동 한국기원 앞 거리의 사진 자료를 보았을 때 곧바로 부산의 중앙동 거리를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내가 알아온 공간이라 떠올렸고 로케이션팀에 제안해 현재 이미지를 담아왔는데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라. 옳다구나 싶어서 당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미술팀이 세팅하여 그 공간을 담았다. 연출자로서 부산에서 찍은 장면 중 제일 마음에 든다.
- 부산 중앙동 거리를 예스러운 간판을 내건 맥줏 집과 신문 가판대 등으로 꾸몄다.
두 인물의 팽팽한 승부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고 어떤 관계와 감정을 쌓았는지도 중요했다. 그래서 그 시대의 공기와 정서를 잘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골 적이진 않지만 ‘닭장차’가 주차돼 있고, 전경들이 대기하는 모습, 소독차가 지나가는 모습 까지도 보여주려 했다.
- 부산 출신으로서 중앙동은 어떤 감정과 역사를 품은 곳으로 알고 있었나.
중앙동은 구도심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해운 대로 많이 놀러 가지만 원래는 남포동과 중앙 동이 구도심이었다. 부산역이 있고, 부산항여객터미널, 항구도 있어서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대로변에서 물러나면 업무 지구가 나오고, 큰 길을 건너면 차이나타운, 러시아 거리도 나온다. 그리고 산동네로 향하는 초입도 금방이다. 중앙동은 복합적이고 블록마다 다른 얼굴을 품고 있고 골목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의 수도였고, 과거 상권이나 사람들의 흔적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인위적으로 조성되고 꾸며진 공간이 아니고 또 그 안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어서 사람 들의 생활감이 묻어난다. 중앙동에 가면 복합적이고 묘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 중앙동 일대는 <헌트>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등 많은 한국영화가 로케이션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곳의 밤은 한국영화에서 많이 보지 못한 듯하다.
중앙동 일대가 밤이 되면 정말 적막하고 고독한 느낌을 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1인자가 무너지고 난 다음 패배감, 당혹감, 고독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정서를 중앙동의 낮은 빨간 벽돌 건물들이 받아주는 듯 느껴지기도 하고 더 몰아붙이는 느낌도 들었다. 좁은 거리는 혼자 걸을 때 인물이 갇혀 있고 길을 잃었다는 느낌도 주고 싶었다.
- 전작 <보안관>은 부산 로컬 수사극이기에 부산 로케이션이 중요하고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대국 신이 많은 <승부>도 부산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까닭은 무엇인가.
중앙동 거리의 의미가 가장 컸다. 로케이션팀이 많은 곳을 헌팅했지만 중앙동만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중앙동 내 유동 인구가 현저히 줄어든다. 주말은 조용해서 더 좋다. 앞서 말했듯 두 인물의 정서를 쌓아나갈수 있는 시대적인 배경을 느낄 수 있는 신이 필요한데, 그 공간을 모두 다 세트로 해결할 수는 없다.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부산의 목욕탕, 다방, 식당은 세트보다더 좋은 질감과 정서가 담겨 있었다. 어차피 중앙동 밤거리 신을 찍게 되었으니 우리가 시대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공간을 부산에서 찾아보면 더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 중앙동이 먼저, 이후 다른 로케이션들이 딸려온 셈이다. 목욕탕 장면도 묻고 싶었다. 조훈현, 이창호 두 사람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아니지만 단순한 사제 관계를 뛰어넘는 끈끈함이 있다. 그 특별한 관계성을 드러내는 장소로 목욕탕을 선정했다. 나란히 등을 밀어주는 신, 사우나 신에서 등장하는 부곡동의 목욕탕은 어떤 면에서 좋았나.
딱 원하는 그림을 담고 있는 곳이었다. 스승과 제자 이상의 관계로 향하는 짧지만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목욕탕이 너무 낡으면 칙칙하고안 어울릴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현대적이고 깨끗하면 또 그 맛이 안 산다. 고민이 많았는데 촬영한 그 목욕탕은 적절한 낡음과 적절한 크기의 동네 목욕탕 같은 느낌이어서 좋았다. 옛날 목욕탕답게 창도 있었다. 장소에 들어가는 순간 여기구나 싶었다.
- 식당과 다방 신은 감전동에서 촬영했다.
감전동에서 13살까지 살았고 초등학교를 그곳에서 나왔다. 내가 기억하던 목욕탕을 찾아 갔는데 현대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던 차에 로케이션팀이 근처 다방이나 식당을 찾아 놓았는데 정말 좋았다. 꾸며진 레트로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였다. 과거 한국기원이 있던 건물 1층에 다방이 있었다. 바둑기사들이 그곳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영화 초반 훈현이 제자 창호를 거두었지만 계속 인정을 못하다가 제자로 인정하는 순간은 다방에서 동료 기사들과 이야기해야 할 것같았다. 그래서 바둑인들만의 다방 신을 표현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감전동의 다방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색감은 묘하게 촌스 럽지만 너무 꾸미지 않아 좋았다. 다방이란 다방은 다 뒤져보고 서울에서도 찾아보았지만 그만한 곳이 없었다.
- 영화감독으로서 부산은 로케이션으로서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부산은 거대한 오픈세트다. 군 제대 후 복학 전에 6~7개월가량 백화점 배송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다. 그러면서 옷, 구두, 식품, 유모차 등 상품을 갖고 부산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때 부산은 정말 넓고 내가 그동안 못 봤던 곳이 많다는 걸 느꼈다. 중앙동 근처의 구도심, 서면과 같은 번화가, 산동네들의 분위기가 다 다르다. 부산의 바다도 다 다르다. 해운대 주변엔 현대적인 건축물이 많다면 광안리는 전통적인 해수욕장의 느낌이고, 다대포는 주변에 큰 시설이 없어 바다 그 자체만 바라 보게 한다. 부산의 골목골목이 다 다르고, 바다 역시 다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생활감이 자연스럽게 묻어 있다. 어떤 영화 속 상황을 상상하든, 어떠한 영화 속 인물을 갖다놓든 기본적으로 부산에서 촬영하면 독특한 정서가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