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용 제작부장은 12년째 영화 제작부에서 한길을 걷고 있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 성향과잘 맞았고, 장기 출장이 일상인 삶도 괜찮았다. 꼼꼼한 성격이기까지 해 제작 업무 가운데서도 로케이션과 예산을 주로 담당해왔다. 제작부 커리어의 시작은 <계춘할망> <아수라> <그것만이 내 세상> 등에 참여했다. <어쩔수가없다>는 그가 <헤어질 결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업한 박찬욱 감독 작품이다. 두 작품에서 부산 로케이션을 맡은 이주용 제작부장만큼 부산 이야기를 들려줄 적임자는 없다고 생각해 그를 대화의 자리로 초대했다.
- <헤어질 결심>을 하는 동안은 부산에 얼마나 머물렀나.
1년 정도였다. 처음부터 부산을 주요 배경으로 정한 작품이라 오래 머물렀다.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고, 그 사진을 감독님께 보여드리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그렇다고 부산 지리를 다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도시가 워낙 넓고 해운대, 중구, 영도구처럼 주로 가는 지역만 다니다 보니 아직도 탐색할 곳이 많다.
- <어쩔수가없다>는 내부자로서 또 관객으로서 어떤 작품으로 남아 있나.
프리프로덕션부터 2025년 9월 개봉까지 약 1년 반 동안 작업했다. 작품이 처음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여러 변화를 거쳐 완성되기까지 전 과정을 함께한 것이다. 그만큼 깊이 관여했고 수도 없이 봐서 그런지 개봉 직후에는 오히려 담담했다. 그런데 이번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다시 보니 ‘정말 좋은 영화를 함께 만들었구나’하는 실감이 들었다. 오랜 팬인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 다시 보면서 좋아하던 장면이나 대사를 발견하기도 했겠다.
만수(이병헌)가 딸 리원(최소율)의 그네를 밀어주는 장면은 다시 봐도 좋더라. 여기서 리원이 “우리 형편에 이 많은 식구를 먹여살리기 어렵다”며 엄마 미리(손예진)의 말을 그대로 따라한다. 그런 이야기를 딸에게 들은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겠나. 만수가 선출(박희순)과 범모(이성민), 시조(차승원)를 향해 총을 겨 눌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 <어쩔수가없다>의 부산 촬영은 처음부터 계획돼 있었나.
원래는 아니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장소를 찾았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 공간들이 있었다. 그문제를 부산이 해결해줬다. 실제 부산 촬영은 8월 말, 4회차로 일주일 동안 진행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일정이 워낙 빠듯해서 부산에 가면 꼭 들르던 단골집에 못 갔다. 해운대 해리단길의 일식집 ‘무스비’인데 청어 소바가 정말 맛있다.
- 만수가 미리에게 실직 사실을 털어놓는 장면은 부산대학교 인문관에서 촬영했다. 만수 뒤로 보이는 외벽이 박찬욱 감독 취향이라고 생각했 다. 크기가 제각각인 사각 창들이 한 벽을 채운 독특한 구조다. 어떻게 찾았나.
부산대 인문관은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다. <헤어질 결심> 때부터 감독님과 미술 감독님이 김중업 건축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래서 초반 컨셉 회의에서 이곳을 제안했다. 다른 후보지도 있었으나 감독님이 이곳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다. 다만 이 장면 하나만 찍기 위해 부산에 갈 수는 없으니 다른 부산 촬영지가 더 생기면 가자고 하셨다. 이후에 부산에서 찍을 일이 더 생기면서 성사됐다. 실제 인문대 신 촬영은 하루 만에 끝났다.
- 또 다른 촬영지는 영도구 오구건축공사와 동구 수성아파트다. 오구건축공사는 만수가 선출을 죽이려 하는 장면에서 상호가 그대로 노출돼 바로 알아볼 수 있었으나 수성아파트는 어느 장면인지 알 수 없더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성아파트 인근 골목과 거리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만수가 선출을 미행하는 장면을 그곳에서 촬영했다.
- 거리 통제가 어렵진 않았나. 제작부에서 오래 일한 만큼 현장 협조를 구하는 나름의 노하우도 있을 것 같다.
이날 촬영은 비교적 무난했다. 거리 촬영 때는 행인들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리고 1분 정도 뒤에 보내드리는 경우가 많다. 잠깐이라도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만큼 그 시간을 최소화하는 데 가장 신경 쓴다. 그런데 부산 시민들은 몇분 이상도 기꺼이 기다려주셨다.
- 부산 로케이션을 담당하며 체감한 부산 촬영의 강점은 무엇인가.
부산만큼 시대적 스펙트럼이 넓은 도시는 드물다. 적산가옥이 많아 일제강점기 분위기를 담을 수 있고, 동구나 중구에는 1950년대 풍경을 실감나게 재현할 수 있는 동네도 있다. 동시에 2020년대 신도시 모습도 찍을 수 있고, 바다까지 품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정말 협조적이다. 젊은이, 어르신 할 것 없이 영화 촬영이라고 하면 무엇이라도 도와주시려 한다. 현장을 설득하고 통제해야 하는 제작부에게는 큰 힘이 된다. 또 부산 촬영이라고 하면 스태프들도 은근히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다. (웃음) 관광지이기도 하니까.
- 부산영상위원회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
아카이빙 자료가 빠르게 업데이트되면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오랫동안 영화 제작부에 몸담고 있다. 어떤 순간에 보람을 느끼고, 무엇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인지 궁금하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말할 것 같은 데, 영화가 좋기 때문이다. 한때 2년 정도 다른 일을 알아본 적도 있었는데 결국 다시 돌아왔다. 복귀한 뒤에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 감사하게도 아직은 힘들 때보다 즐거울 때가 더 많다. 연차가 쌓일수록 계획한 촬영을 무사히 마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오늘 내 역할을 다했다’는 뿌듯함이 밀려 온다. 또 현장에 있으면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중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이 일을 계속 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 앞으로 어떤 작품에 참여하나.
변요한 배우 주연의 <손 없는 날>이다. 이미 촬영을 시작했고 8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연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올해 하반기는 이 작품과 함께 보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