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영화 <승부>에서 감정적으로 중요한 장면은 모두 부산에서 촬영되었다. 한국 바둑의 전설 조훈현(이병헌)이 어린 이창호(김강훈)를 내제자로 들인 다음 처음으로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장면은 부산의한 다방에서 촬영되었다. 그리고 제자에게 처음으로 패배해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신도 부산의 한 골목에서 완성되었다. <승부>의 부산 촬영 회차는 총 8회. 결코 많은 회차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배우와 제작진의 감정은 부산에서 가장 뜨거웠으리라 짐작한다. 참고로 <승부>의 시간적 배경은 1980년대다. 부산은 현대적인 도시지만 골목 안으로 접어들면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어 <승부>의 제작진은 부산을 해당 장면들을 완성할 최적의 로케이션이라고 보았다. 정은영 미술감독의 코멘트와 함께 부산 촬영 비하인드를 담은 제작기를 읽다 보면 <승부> 속 명장면들이 속속 떠오를 것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부산을 배경으로 한 로컬 수사극 <보안관>으로 데뷔했고, <승부>에서도 부산을 찾은 김형주 감독의 인터뷰도 전한다. 그의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부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조훈현은 제자 이창호(유아인)에게 처음 패한 다음 기자들의 질문을 물리치고 기원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거리에서 숨을 몰아쉰다. 감정적으로 중요한 이 신은 과거 한국기원이 있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일대로 설정돼 있지만, 실은 부산 중앙동4가의 골목에서 촬영되었다. “70~80년대 오래된 건축물들의 텍스처와 골목의 밀도가 과거 한국기원이 있던 종로 관철동의 분위기와 많이 닮아있었”(정은영 미술감독)기에 김형주 감독을 비롯한 <승부>의 제작진이 처음부터 점찍은 로케이션이다. 나지막한 붉은색 벽돌 건물들, 전깃 줄이 가득한 거리는 과거의 인물을 한층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들며, 조훈현의 감정에 금방 감정이입하게 이끈다.
<승부>의 미술팀은 100m 넘는 중앙동 4가의 한 섹터에 있는 1층 상점들의 간판을 바꾸고 창문 랩핑을 해서 과거로 돌아간 듯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거기다 “가판대와 네온사인, 포장마차와 같은 요소들이 거리 한두 군데 들어가서 그때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포인트”(정은영 미술감독)로 삼았다. “아무래도 현재의 중앙동4가 1층의 상점들은 현대적인 분위기가 많이 난다. 간판의 색감과 타이포그래피에서 가장 차이가 난다. 그래서 미술팀에서 모두 새로 세팅했는데 다행히 부산 주민들이 협조를 잘해주셨다.”(정은영 미술감독)
요즘 지하철 승강장에는 사고를 방지하는 스크린도어가 일제히 설치돼 있다.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을 영화로 재현하려는 영화인들에게 부산의 부산진역은 소중한 촬영 명소다. 승강장 내에 설치된 가림막을 치우면 반입 전용 선로가 나타나 스크린도어 없이 전철이 오가는 모습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은영 미술감독에 따르면 “원하는 느낌대로 찍을 수 있는 공간”이다. <승부>의 미술팀은 부산진역을 서울 시청역으로 바꾸는 랩핑 작업을 진행하고, 조훈현의 위궤양 치료제 광고판을 역 내에 심어두어 예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만들었다.
“특이한 놈이야. 복기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희한하게 바둑은 계속 늘어요.” 한국기원 건물 1층 다방에서 바둑기사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조훈현은 처음으로 자신의 제자를 인정하는 말을 내뱉는다. 이 장면은 부산 감전동에 있는 남영다방에서 촬영되었다. “한국기원이 있던 건물 내에 시인협회도 있었고 바둑 출판사, 한국시인협회도 있었다. 그 건물 1층 다방은 바둑인들과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다. 남영다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카운터도 그렇고 옛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느낌을 살리고 요즘은 잘 안 쓰는 붉은색 커튼을 달고 어항을 넣어서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도록 세팅했다.”(정은영 미술감독)
부산 부곡동에 자리한 현수탕은 옛날 목욕탕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다. 그곳에 배우들을 데려다놓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듯 느껴지게 만들었다. 특히 목욕탕 내부의 작은 창문들은 현대의 목욕탕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구조물로, 모두의 기억 속 목욕탕을 떠올리게 만드는 동시에 프레임 안에 자연광이 자연스럽게 비치도록 했다. “현수탕은 옛날 우유와 TV 등 소품만 세팅했을 뿐, 미술팀이 거의 손대지 않은 로케이션이 었다. 옛날식 사물함과 커트실, 창문 등 과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목욕탕이었다.” (정은영 미술감독)






